1898년 9월 1일, 여성들이 ‘권리’를 말하다|여권통문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여성들이 여학교를 세우자며 낸 통문에는 ‘구월 일일’과 이소사·김소사라는 발기인 명의가 남아 있다. 오늘날 ‘여권통문’으로 널리 부르는 문서다.

이 문서는 단지 학교 하나를 세우자는 호소문이 아니었다. 여성도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며,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한국 최초의 여성 권리 선언문으로 평가한다.

날짜는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문 말미의 날짜는 9월 1일이지만, 전문은 9월 8일 『황성신문』, 9월 9일 『독립신문』에 실렸다. 9월 1일을 ‘신문에 처음 게재된 날’이라고 쓰면 안 된다.

이 글에서는 통문의 원래 이름과 세 가지 권리, 선언 이후의 실천, 그리고 오늘까지 이어진 기념일의 의미를 차례로 살핀다.


목차


1. 1898년 9월 1일, 어떤 통문이 나왔나

국사편찬위원회가 소개한 원문 끝에는 ‘구월 일일 녀학교 통문 발긔인’이라는 문구와 이소사·김소사 명의가 적혀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1898년 9월 1일을 통문의 날짜로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이 통문을 서울 북촌의 이소사·김소사 이름으로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소사’는 당시 여성을 부르던 호칭이므로, 이를 두 사람의 개인 본명으로 단정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통문은 여성에게 여학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입학할 여아의 이름을 올려 달라고 호소했다. 구체적인 학교 설립 제안에서 시작했지만, 그 이유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분명히 꺼내 놓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2. ‘여권통문’의 원래 이름은 무엇인가

원문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의 표제는 ‘여학교 설치 통문’이다. ‘여권통문’은 이 문서를 오늘날 가리킬 때 널리 쓰는 이름이다.

이름의 차이는 문서의 성격을 더 잘 보게 한다. 당시에는 여학교 설립이라는 실천 과제가 전면에 있었고, 오늘날에는 그 안에 담긴 권리 주장을 중심으로 ‘여권통문’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두 이름을 섞어 같은 시기의 공식 표제처럼 쓰지 않는다. 1898년의 문서명은 ‘여학교 설치 통문’, 그 문서를 부르는 현재의 통칭은 ‘여권통문’이다.


3. 통문은 여성의 어떤 권리를 말했나

국사편찬위원회 해설은 통문의 주장을 세 갈래로 정리한다. 여성도 문명 개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참정권, 평등하게 직업을 가질 권리인 직업권,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인 교육권이다.

원문은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은 몸과 능력을 가졌는데 왜 남성에게 의지한 채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이어 외국의 여성들이 학교에서 여러 학문을 배우고 권리를 누리는 모습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에도 여학교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따라서 여권통문의 의미를 ‘교육 열망’ 하나로만 좁히기 어렵다. 교육은 독립된 삶과 사회 참여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놓였고, 직업권과 참정권의 주장도 함께 담겼다.


4. 선언은 찬양회와 순성여학교로 어떻게 이어졌나

통문이 돌린 뒤 여성들은 부인회를 조직하고 여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898년 9월 11일과 12일에는 찬양회 조직과 순성여학교 설립 결의가 논의됐다.

서울 이화학당의 어린 여학생들을 촬영한 역사 사진
▲ 서울 이화학당의 어린 여학생들을 촬영한 역사 사진. 여권통문이 직접 세운 학교의 학생들은 아니지만, 근대 조선에서 여성 교육이 확대되던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찬양회는 여성 계몽과 여성 교육기관 설립을 위한 정기 집회, 연설회, 토론회를 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회원들이 관립여학교 설립을 청원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산과 규칙을 마련했지만 관립여학교 설립까지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 뒤 찬양회는 자체적으로 학교를 추진해 1899년 2월 26일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고 신입생 50명을 모집했다. 여성가족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흐름을 선언이 실제 조직과 교육기관 설립으로 이어진 사례로 설명한다.


5. 9월 1일은 왜 여권통문의 날이 됐나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 제2항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 발표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정한다. 이 법정기념일은 1898년 통문 날짜를 오늘의 기억과 연결한다.

기념일이 있다고 해서 1898년의 문제들이 이미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 장의 통문이 제기한 교육·일·정치 참여의 질문을 다시 읽게 하는 날에 가깝다.

여권통문의 힘은 거창한 구호만으로 생기지 않았다. 여학교를 세우고, 회원을 모으고, 청원하고, 결국 학교를 열려 했던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랐다. 그래서 이 기록은 선언과 실천이 만나는 근대 여성운동의 출발점으로 남는다.


마치며

1898년 9월 1일의 ‘여학교 설치 통문’, 곧 여권통문은 여성의 교육권·직업권·참정권을 함께 주장했다. 원문 날짜와 신문 게재일을 구분해 읽을 때, 이 문서가 남긴 목소리와 그 뒤에 이어진 찬양회·순성여학교의 실천도 더 정확히 보인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여권통문은 언제 발표됐나요?

원문 말미의 ‘구월 일일’과 정부 자료를 기준으로 1898년 9월 1일입니다. 다만 전문 신문 게재는 『황성신문』이 9월 8일, 『독립신문』이 9월 9일입니다.

Q2. 여권통문의 원래 이름은 무엇인가요?

‘여학교 설치 통문’입니다. ‘여권통문’은 이 문서를 오늘날 널리 부르는 이름입니다.

Q3. 여권통문은 어떤 권리를 주장했나요?

여성의 교육권·직업권·참정권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세 권리를 통문의 핵심 주장으로 정리합니다.

Q4. 여권통문의 날은 법정기념일인가요?

네.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 제2항은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정합니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여학교 설치 통문」, 『사료로 본 한국사』
  • 여성가족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女權通文)’을 아십니까?」
  • 국가법령정보센터,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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