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8월 31일, 우리말을 연구하는 모임이 시작됐다|국어연구학회 창립

1908년 8월 31일, 봉원사에서 국어연구학회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국사편찬위원회 「근대사연표」는 이날 ‘주시경 등, 국어연구학회 조직’이라고 기록한다.

이 모임은 오늘의 한글학회가 자신의 연혁 출발점으로 삼는 단체다. 다만 1908년에 처음부터 ‘한글학회’라는 이름을 쓴 것은 아니다. 출발 당시 이름은 국어연구학회였고, 이후 여러 이름을 거쳐 1949년에 한글학회로 기관명을 바꿨다.

그래서 이 날을 주시경 한 사람의 업적으로만 적으면 중요한 맥락이 빠진다. 한글학회 자료에 따르면 하기 국어강습소 수료생과 국어 연구에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모였고, 초대 회장은 김정진이었다. 주시경은 학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문전 저술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글에서는 8월 31일 창립총회에서 확인되는 사실, 주시경과 김정진의 역할, 그리고 국어연구학회가 남긴 계보를 차례로 정리한다.


목차


1. 1908년 8월 31일, 무엇이 시작됐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근대사연표」는 1908년 8월 31일에 ‘주시경 등, 국어연구학회 조직’이라고 적는다. 날짜와 사건을 가장 짧게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글학회가 펴낸 자료는 이 단체를 1908년에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로 소개한다. 국가기록원도 한글학회의 설립일을 1908년 8월 31일로 제시하며, 연혁 첫 항목에 국어연구학회 창립을 적고 있다.

따라서 이 날의 사건은 ‘한글학회’라는 현재 명칭의 단체가 곧바로 생긴 날이라기보다, 그 계보의 출발인 국어연구학회가 조직된 날로 쓰는 편이 정확하다.


2. 왜 봉원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나

한글학회 자료에 따르면 국어연구학회는 1907년과 1908년에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열린 하기 국어강습소 수료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908년 8월 31일은 제2회 하기 국어강습소의 수료일이기도 했다.

창립총회는 봉원사에서 열렸다. 강습을 함께 마친 사람들이 국어 연구를 지속할 모임을 만든 것이므로, 이 날짜는 한 번의 강연이나 출판이 아니라 연구 단체의 공식 출발로 기록된다.

이 대목에서 ‘봉원사가 학회의 상설 본부였다’고 확대해석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공식 자료가 확인하는 사실은 창립총회 장소가 봉원사였다는 점이다.


3. 주시경과 김정진의 역할은 어떻게 달랐나

국사편찬위원회 연표는 ‘주시경 등’이라는 표현으로 조직 사실을 남긴다. 국어연구학회 창립을 한 사람의 단독 행위로 기록하지 않은 표현이다.

주시경 선생의 국어 연구 유고
▲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국어 연구 유고. 주시경은 1908년 국어연구학회 창립에 참여하고 국어 연구와 국문 정리에 힘썼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제1유형)

한글학회 자료는 창립총회에서 당시 현직 교사였던 김정진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고 설명한다. 같은 자료에서 주시경은 국어연구학회의 정신적 지주로서 강연을 하고 ‘문전 저술위원’ 역할을 맡은 인물로 소개된다.

둘의 역할을 구분하면 사건이 선명해진다. 김정진은 창립 당시 초대 회장, 주시경은 국어 연구와 국문 정리의 뜻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주시경 등이 조직했고 김정진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는 문장이 확인된 사실에 가장 가깝다.


4. 국어연구학회는 한글학회와 어떻게 이어지나

국어연구학회의 이름은 계속 유지되지 않았다. 한글학회 자료에는 국어연구학회(1908), 배달말글몯음·조선언문회(1911), 한글모(1913)로 이어지는 초창기 명칭 변화가 정리돼 있다.

국가기록원은 한글학회 연혁에서 1908년 국어연구학회 창립 뒤 1949년 ‘한글 학회’로 기관명을 변경했다고 적는다. 그러므로 1908년의 국어연구학회와 현재의 한글학회는 계보로 연결되지만, 두 이름을 같은 시점의 공식 명칭처럼 섞어 쓰면 안 된다.

이 구분은 우리말 연구의 역사를 더 정확히 보게 한다. 한 단체의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도 시대의 언어 환경과 연구 활동의 지속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5. ‘우리말 연구’가 모임의 일이 된 날

한글학회 자료는 국어연구학회의 창립 목적을 ‘국어를 연구’하는 데 두었다고 설명한다. 또 후속 단체의 규칙을 통해 조선의 언문을 실행하는 일도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1908년 8월 31일의 의미는 우리말과 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공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연구와 교육을 이어 갈 모임을 세운 데 있다. 훗날 국어 교육, 사전 편찬, 출판 같은 활동으로 이어진 한글학회 연혁의 첫머리에 이 날이 놓이는 이유다.

국어연구학회가 모든 일을 완성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말 연구를 함께 지속할 조직을 세웠고, 그 기록이 지금까지 한글학회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하루다.


마치며

1908년 8월 31일 봉원사에서 열린 국어연구학회 창립총회는 한글학회 계보의 출발점이다. 주시경 등을 비롯한 뜻있는 이들이 조직했고, 김정진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의 이름은 국어연구학회였으며,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꾼 뒤의 명칭과는 구분해 기억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국어연구학회는 언제 창립됐나요?

1908년 8월 31일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근대사연표」는 이날 주시경 등이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했다고 기록합니다.

Q2. 창립총회는 어디에서 열렸나요?

한글학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 봉원사에서 열렸습니다. 이 날은 제2회 하기 국어강습소 수료일이기도 했습니다.

Q3. 국어연구학회를 주시경이 혼자 만들었나요?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주시경 등’이 조직했다고 기록합니다. 한글학회 자료는 하기 국어강습소 수료생과 뜻을 같이한 이들이 창립에 참여했으며, 초대 회장은 김정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Q4. 국어연구학회와 한글학회는 같은 이름인가요?

같은 시점의 이름은 아닙니다. 국어연구학회는 1908년의 창립 명칭이고, 국가기록원은 한글학회가 1949년에 현재의 기관명으로 바뀌었다고 기록합니다. 다만 한글학회는 국어연구학회를 자신의 연혁 출발점으로 제시합니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근대사연표」
  • 국가기록원, 「한글이 걸어온 길: 관련기관 및 단체」
  • 한글학회, 이관규, 「국어연구학회의 창립과 의의」, 『한글 새소식』 제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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