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일, 『제국신문』이 종간한 날|한글 대중신문의 기록
1910년 8월 2일은 여러 신문 아카이브와 연구 자료에서 『제국신문』의 폐간일 또는 종간일로 기록된다. 1898년 8월 10일 창간한 이 신문은 순한글로 발행돼 일반 민중과 부녀자를 주요 독자로 삼았다.
다만 이 날짜를 단정하기 전에 짚을 점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는 『제국신문』이 1910년 3월 31일자를 끝으로 4월 1일부터 휴간했고 재간행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반면 국립국어원 2025년 보고서와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를 인용한 연구는 8월 2일을 폐간일로 적는다.
이 글은 두 기록을 섞어 하나의 확정 사실처럼 만들지 않는다. 8월 2일은 널리 인용되는 종간일로 소개하되, 마지막 발행일에는 자료 차이가 있음을 함께 밝힌다. 역사에서 날짜 하나가 흔들릴 때는 더 큰 문장보다 출처의 차이를 먼저 보여 주는 편이 정확하다.
또한 8월 2일은 한일병합조약의 조인일도 공포일도 아니다. 조약 문서는 8월 22일에 작성·조인됐고, 대한제국 관보 호외에는 8월 29일자로 실렸다. 『제국신문』의 종간을 그 격변의 8월과 함께 보되, 서로 다른 사건의 날짜는 구분해 읽어야 한다.
목차
- 1. 1910년 8월 2일은 무엇을 뜻하나
- 2. 『제국신문』은 누구를 위해 한글로 썼나
- 3. 재정난과 검열은 신문에 어떤 부담이었나
- 4. 신문의 논조와 운영은 왜 한 모습으로 단정할 수 없나
- 5. 1910년 8월의 날짜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 자주 묻는 질문 (FAQ)
1. 1910년 8월 2일은 무엇을 뜻하나
『제국신문』은 1898년 8월 10일 창간됐다. 국립국어원 보고서는 이 신문이 1907년부터 휴간과 재간행을 거듭하다가 1910년 8월 2일 폐간됐다고 정리한다. 여러 연구도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의 발행 기간을 1910년 8월 2일까지로 인용한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는 다른 기록을 남긴다. 이 자료는 1910년 3월 31일자를 발행하고 4월 1일부터 휴간에 들어갔으며, 이후 재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8월 2일 폐간”은 사용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현존 자료 사이에 마지막 발행일의 차이가 있다는 단서를 빼면 안 된다. 이 글에서는 8월 2일을 종간일로 다루면서도 3월 31일자 기록을 함께 적는다.
2. 『제국신문』은 누구를 위해 한글로 썼나
창간 당시 제호는 『뎨국신문』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03년 7월부터 한자 제호 『帝國新聞』을 썼지만, 신문 본문은 순국문으로 발행됐다.

국한문체로 발행된 『황성신문』이 양반·유림층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제국신문』은 하층민과 부녀자를 주요 독자로 삼았다. 당시 『제국신문』을 ‘암신문’, 『황성신문』을 ‘숫신문’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순한글 발행은 글을 아는 사람이 더 넓게 신문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신문이 국문의 중요성을 알리고, 하층민의 지식 계발과 국민 계몽을 실천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3. 재정난과 검열은 신문에 어떤 부담이었나
신문 운영은 처음부터 안정적이지 않았다. 1899년 12월 인쇄시설이 화재로 전소된 뒤 재정 상태가 크게 어려워졌고, 만성적인 재정 적자가 이어졌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는 일제의 신문 사전검열로 10여 차례 휴간했다는 설명도 있다. 1907년에는 지면 확대와 인력 영입 뒤 재정난이 더 커져 9월 21일 폐간을 선언했으나, 기부금이 모여 10월 3일부터 다시 발행했다.
마지막 종간을 재정난만으로, 또는 검열·탄압만으로 설명하면 기록의 한쪽을 지우게 된다. 확인되는 자료는 재정난과 사전검열, 휴간과 재발행이 신문사의 장기적인 조건이었음을 보여 준다.
4. 신문의 논조와 운영은 왜 한 모습으로 단정할 수 없나
『제국신문』은 이종일·유영석·이승만 등과 인쇄소 관계자들이 발행에 참여했고, 창간 직후부터 이종일이 운영을 주로 맡았다. 옥중의 이승만이 1901년부터 1903년까지 논설을 집필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1907년 이후 정운복이 사장이 된 뒤의 신문을 창간기의 모습으로만 볼 수는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는 이 시기 『제국신문』이 이전보다 계몽적 연재물을 많이 실으면서도 친일적 경향을 보였다고 서술한다.
그래서 『제국신문』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논조를 지킨 신문”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보다, 한글 대중신문이 재정·검열·운영진 변화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의 기록으로 읽는 편이 맞다.
5. 1910년 8월의 날짜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제국신문』의 종간일로 널리 인용되는 8월 2일은 한일병합조약의 날짜와 다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대한제국 관보는 조약 문서의 작성일을 1910년 8월 22일, 관보 호외의 발행일을 1910년 8월 29일로 제시한다.
따라서 “8월 2일에 한일병합이 이뤄졌다”거나 “신문이 병합조약 때문에 그날 강제 폐간됐다”라고 쓰면 확인된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8월 2일의 종간 기록, 8월 22일의 조약 작성·조인, 8월 29일의 공포를 각각 분리해야 한다.
그 구분은 사건의 무게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글 대중신문의 종간과 국권 상실이 같은 달에 놓였다는 사실을, 과장 없이 더 또렷하게 보여 준다.
마치며
『제국신문』은 순한글로 일반 민중과 부녀자에게 다가간 대한제국기 신문이었다. 재정난과 검열, 휴간과 재발행, 운영진 변화는 이 신문이 남긴 기록의 일부다.
1910년 8월 2일은 여러 아카이브·연구에서 종간일로 쓰이지만,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는 3월 31일자 마지막 발행 뒤 휴간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차이를 함께 적는 것이 신문의 역사와 1910년 8월을 가장 정직하게 기억하는 방법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제국신문』은 언제 창간됐나?
1898년 8월 10일 창간됐다. 처음 제호는 『뎨국신문』이었고, 1903년 7월부터 『帝國新聞』이라는 한자 제호를 사용했다.
Q2. 『제국신문』의 폐간일은 1910년 8월 2일로 확정됐나?
국립국어원 보고서와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를 인용한 연구는 8월 2일을 종간일로 적는다. 다만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는 3월 31일자 발행 뒤 4월 1일부터 휴간했고 재간행되지 않았다고 적어, 마지막 발행일 기록에는 차이가 있다.
Q3. 『제국신문』은 왜 중요한가?
순한글로 발행돼 일반 민중과 부녀자를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고, 국문의 중요성과 국민 계몽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다만 운영진 변화에 따른 논조의 변화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Q4. 한일병합조약은 언제 조인되고 공포됐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대한제국 관보에 따르면 조약 문서의 작성·조인일은 1910년 8월 22일이며, 관보 호외 발행일은 8월 29일이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제46권 「한말 언론과 계몽운동」의 「제국신문」
- 국립국어원, 『2025 근현대 국어자료 원문 수집 및 정제』 결과보고서
-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 인용 연구, 『제국신문』 발행 기간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대한제국 관보』 1910년 8월 29일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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