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공개 증언은 무엇을 바꿨나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은 서울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국가기록원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록은 이 날을 국내 피해 생존자 가운데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로 기록한다.
이 날을 기억할 때 ‘최초’라는 말의 범위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모든 피해 경험이나 관련 문제 제기를 처음 알린 사건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초의 공개 증언이라는 뜻이다. 그 이전에도 관련 언급과 기록은 존재했다.
김학순의 증언은 한 사람의 경험을 역사 기록의 앞자리로 가져왔다. 이후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록화가 이어졌고, 8월 14일은 현재 법률에 따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됐다.
이 글은 그날의 공개 증언이 어떤 기록으로 남아 있는지, 왜 ‘공개 증언’이라는 표현이 중요한지, 그리고 오늘의 기림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차례로 살펴본다.
목차
- 1. 1991년 8월 14일, 무엇이 있었나
- 2. 왜 ‘최초의 공개 증언’이라고 하나
- 3. 한 사람의 증언 뒤에 이어진 기록
- 4. 8월 14일은 왜 기림의 날이 됐나
- 5. 이 날을 기억할 때 지켜야 할 구분
- 자주 묻는 질문 (FAQ)
1. 1991년 8월 14일, 무엇이 있었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의 1991년 8월 14일 사진 기록은 김학순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국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고 설명한다. 국가기록원도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증언을 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최초 공개 증언으로 소개한다.
공개 증언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 피해 경험을 말한 일이었다.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조건 속에서, 김학순은 자신의 경험을 개인의 침묵으로 남기지 않고 세상 앞에 증언했다.
다만 이 글은 피해 경험의 구체적 내용을 재현하지 않는다. 이 날의 역사적 의미는 자극적인 묘사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알리고 존엄을 회복하려 했다는 데 있다.
2. 왜 ‘최초의 공개 증언’이라고 하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김학순을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한국인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 사건을 쓸 때에는 ‘한국인 피해자의 공개 증언’이라는 범위를 함께 적는 편이 정확하다.
국가기록원 발간물 「기록의 발견」은 1991년 8월 14일의 공개 증언을 계기로 문제가 제기됐다고 알려져 왔지만, 그보다 앞선 시기에도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와 실태가 언급됐다고 설명한다. ‘1991년에 처음 존재를 알았다’고 단정하면 이 기록의 층위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김학순의 증언이 갖는 무게는 앞선 모든 기록을 지운 데 있지 않다. 피해 생존자가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면서, 문제를 피해자의 목소리와 권리의 문제로 선명하게 드러낸 데 있다.
3. 한 사람의 증언 뒤에 이어진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김학순의 공개 증언 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피해 신고전화를 열어 증언을 모았다고 기록한다. 이후 다른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도 이어졌고, 개인의 경험은 구술·사진·문서로 남겨지는 역사 기록이 됐다.
이 과정을 단지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줄일 수는 없다. 증언에는 피해자의 결심이 있었고, 이를 듣고 보존하며 사회에 전달한 사람들과 기관의 작업도 뒤따랐다. 기록은 사실을 남기는 동시에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는 김학순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이자 최초 공개증언자로 소개하며, 그의 공개 증언 뒤 보상 청구 소송과 활동이 이어졌다고 정리한다. 이 글은 그 이후의 법적·외교적 쟁점 전체를 판단하지 않고, 공개 증언이 기록과 기억의 출발점이 된 사실에 초점을 둔다.
4. 8월 14일은 왜 기림의 날이 됐나
현행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정한다.
이 날짜는 김학순의 공개 증언일을 기리는 뜻에서 선택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는 2012년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8월 14일을 기림일로 정한 사실을 설명한다.
기림의 날은 과거를 한 문장으로 끝내는 날이 아니다. 피해 생존자의 존엄과 명예를 기억하고, 전시 성폭력과 인권 침해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대해야 하는지 되묻는 날이다.
5. 이 날을 기억할 때 지켜야 할 구분
첫째, 김학순을 ‘모든 피해 경험을 처음 알린 사람’이라고 넓혀 쓰지 않는다. 확인 가능한 범위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초의 공개 증언이다.
둘째, 공개 증언을 한 사람의 개인사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증언은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 기록화, 기념 활동과 연결됐지만, 각 피해자의 경험은 서로 다른 삶의 기록으로 존중해야 한다.
셋째, 기림의 날을 국가 간 쟁점의 단순한 구호로 축소하지 않는다. 법률이 정한 취지처럼, 이 날의 중심에는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존엄, 그리고 인권의 문제가 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의 범위를 좁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의 목소리가 언제, 어떤 위험과 결심 속에서 공적인 기록이 됐는지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마치며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공개 증언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석상에서 알린 기록이다. 그 증언은 이후 이어진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기록을 사회가 마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매년 8월 14일의 기림은 과거의 고통을 반복해서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의 존엄을 중심에 놓고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려는 약속이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김학순은 무엇을 처음 증언했나요?
김학순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습니다. 국가기록원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한국인 피해자 가운데 최초의 공개 증언으로 기록합니다.
Q2. 8월 14일은 법정 기념일인가요?
네. 현행 법률 제11조의2는 매년 8월 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정합니다.
Q3. 1991년 이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기록원 발간물은 1991년 공개 증언 이전에도 관련 존재와 실태가 언급됐다고 설명합니다. 김학순의 역사적 위치는 한국인 피해자의 공개 증언이라는 범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Q4. 기림의 날은 어떤 의미인가요?
피해자를 기리고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는 날입니다. 피해 생존자의 존엄과 명예를 기억하며, 전시 성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의미도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일본군위안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학순」
- 국가기록원, 「기록의 발견」
- 국가법령정보센터,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
-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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