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25일, 《동아일보》 석간 2판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손기정의 사진에서 유니폼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 이 사진 게재는 오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불린다.
먼저 날짜를 구분해야 한다.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은 8월 9일이었고, 이 글이 기록하는 8월 25일은 그 시상식 사진이 다시 편집돼 신문에 실린 날이다. 우승의 기쁨과 사진을 둘러싼 검열은 연결돼 있지만 같은 사건은 아니다.
사진의 원본은 일본 《오사카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시상식 사진이었다.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선수였지만 당시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고, 원본에는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이 보인다. 《동아일보》는 그 표식을 지운 사진을 석간 2판에 게재했다.
이 글은 사진을 지운 일을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당시 언론인과 사진부 관계자들이 겪은 구속·퇴직, 신문사에 내려진 처분까지 확인된 기록의 범위에서 살펴본다.
목차
- 1. 1936년 8월 25일 신문에는 무엇이 실렸나
- 2. 손기정의 우승일과 사진 게재일은 어떻게 다른가
- 3. 사진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 달라졌나
- 4. 사진 한 장 뒤에는 어떤 탄압이 있었나
- 5. 일장기 말소사건을 기록할 때 구분해야 할 것
- 자주 묻는 질문 (FAQ)
1. 1936년 8월 25일 신문에는 무엇이 실렸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사진을 싣고 유니폼의 일장기를 없앤 일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설명한다. 별도의 사진 자료 항목은 이 사진이 같은 날 석간 2판에 실렸다고 더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이날의 사진은 처음으로 손기정의 사진을 다룬 보도는 아니었다. 백과사전은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8월 13일에도 사진의 일장기를 지워 게재했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8월 25일자 사진이 일본 관헌의 문제 제기로 이어지면서 사건의 중심이 됐다.
그러므로 ‘8월 25일은 손기정이 우승한 날’이라고 쓰면 틀린다. 정확한 기록은 이렇다. 8월 25일은 식민지 신문이 시상식 사진의 표식을 지워 실었고, 그 편집이 검열 당국의 탄압으로 이어진 날이다.
2. 손기정의 우승일과 사진 게재일은 어떻게 다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손기정 항목에 따르면 그는 1936년 8월 9일 밤 11시, 한국시간 기준으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당시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우승 뒤 10여 일이 지나 《동아일보》의 이길용 기자와 이상범 화백 등이 시상대 사진의 일장기를 지운 뒤 8월 25일자 석간으로 배포했다는 것이 같은 자료의 설명이다. 우승일과 사진 게재일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다.
두 날짜를 구분하면, 손기정 개인의 경기 성취와 신문사가 사진을 통해 드러낸 편집 행위, 그리고 그에 대한 식민지 권력의 대응을 각각 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또렷하게 남기는 데는 이 순서가 필요하다.
3. 사진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 달라졌나
사진 자료 항목 「시상대 위의 손기정」은 이 사진을 《오사카아사히신문》 사진부 사사키 기자가 촬영한 시상식 사진으로 소개한다. 1936년 베를린에서 촬영·공표된 원본에는 월계관을 쓰고 화분을 든 손기정의 모습과 유니폼의 일장기가 함께 담겼다.
《동아일보》가 8월 25일 석간 2판에 실은 사진에서는 그 일장기가 지워졌다. 사진의 내용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원본에 있던 표식을 지우는 편집이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스포츠 경기 결과만이 아니라 사진·신문·검열의 관계를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이 글에는 당시 사진을 넣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해당 미디어는 사이트 안에서의 활용만 허가돼 있고 자유 이용·다운로드가 불가하다고 표시한다. 사건 사진을 쉽게 재사용 가능한 자료로 오인하지 않기 위해서다.
4. 사진 한 장 뒤에는 어떤 탄압이 있었나
사진 게재 뒤 총독부 검열 당국은 신문의 발매와 배포를 금지하고 진상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 결과 《동아일보》가 무기 정간 처분을 받고, 《조선중앙일보》는 자진 휴간 뒤 폐간됐다고 기록한다.
피해는 신문사 처분에 그치지 않았다. 사건 항목에는 《동아일보》의 송진우 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 등의 퇴직과 현진건·이길용·장용서·이상범·신낙균 등 관계자 8명의 구속이 기록돼 있다. 개인별 역할과 책임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이 사건은 단순히 ‘사진을 고친 일’로 끝나지 않았다. 사진 한 장을 둘러싼 편집이 신문 발행의 중단과 언론인들에 대한 처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검열이 작동한 방식을 보여 준다.
5. 일장기 말소사건을 기록할 때 구분해야 할 것
첫째, 우승일과 사건일을 구분한다.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은 8월 9일, 《동아일보》 석간의 사진 게재는 8월 25일이다.
둘째, 당시의 출전 체계와 오늘의 국가 명칭을 구분한다. 손기정은 조선인 선수였으나 일제강점기 아래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이를 오늘의 국가대표 체계로 바꾸어 쓰면 당시의 강제된 현실이 사라진다.
셋째, 사진의 원본과 편집본을 구분한다. 원본은 시상식의 손기정과 유니폼의 일장기를 담았고, 8월 25일자 석간 2판에는 그 표식을 지운 사진이 실렸다. 이 차이가 바로 사건의 핵심이다.
1936년 8월 25일의 신문 한 면은 한 선수의 우승을 다시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 사진을 둘러싼 선택과 처벌은, 식민지 시기의 언론과 검열을 함께 기억하게 한다.
마치며
1936년 8월 25일 《동아일보》 석간은 손기정 시상식 사진의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 손기정의 우승일과 다른 이 날짜는, 사진의 편집이 곧 언론 탄압으로 이어진 일장기 말소사건의 중심에 있다.
사진을 볼 때는 누가 우승했는지만이 아니라, 원본이 어떻게 편집됐고 그 뒤에 어떤 처벌이 따랐는지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건을 상징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확인 가능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일장기 말소사건은 언제 일어났나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동아일보》가 손기정 시상식 사진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한 날은 1936년 8월 25일입니다. 사진 자료 항목은 석간 2판으로 기록합니다.
Q2.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일도 8월 25일인가요?
아닙니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습니다. 8월 25일은 그 시상식 사진을 둘러싼 일장기 말소사건의 날짜입니다.
Q3. 손기정은 어느 나라 대표로 출전했나요?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선수로서 당시 일본 대표단의 일원으로 출전했습니다. 오늘의 국가대표 체계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정확합니다.
Q4. 일장기 말소사건 뒤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총독부 검열 당국의 발매·배포 금지와 조사, 《동아일보》의 무기 정간 처분, 관련 언론인들의 구속과 퇴직을 기록합니다.
참고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장기 말소사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손기정」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상대 위의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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