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한·중은 어떻게 국교를 수립했나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한민국의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첸치천 외교부장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 공동성명에 따라 두 정부는 서로를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은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처음 시작된 날이 아니라, 오랫동안 단절돼 있던 관계가 공식 외교관계로 바뀐 날이다. 국가기록원은 1990년 양국이 무역대표부를 설치했고, 1992년 4월 수교 협상을 시작한 뒤 8월 24일 공동성명 서명으로 국교가 수립됐다고 기록한다.

날짜를 섞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노태우 대통령의 첫 중국 국빈 방문과 첫 정상회담은 수교 당일이 아니라 같은 해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이뤄졌다. 수교공동성명 서명과 정상회담을 같은 날의 일로 쓰면 사건의 순서가 흐려진다.

이 글은 수교를 ‘관계의 완성’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공동성명이 실제로 무엇을 약속했는지, 왜 1992년에 가능했는지, 그리고 수교일과 이후의 외교 일정을 어떻게 구분해 읽어야 하는지를 공식 기록의 범위에서 정리한다.


목차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과정과 8월 24일 수교공동성명 서명, 9월 28일 첫 한중 정상회담을 정리한 인포그래픽
▲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과정. 4월 수교 협상 시작과 8월 24일 수교공동성명 서명, 9월 28일 첫 한·중 정상회담까지의 주요 흐름을 정리했다. (자료: 국가기록원·외교부 / 인포그래픽 제작: dolnews.com)

1.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국가기록원은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한·중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정식 국교가 수립됐다고 설명한다. 국가기록원의 당시 문서 설명에는 이 수교의 배경과 경과, 의의, 협력관계 증진 방안, 대만과의 관계 대책 등이 이틀 뒤 국무회의에 보고됐다고 남아 있다.

서명 당사자는 한국의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의 첸치천 외교부장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국가기록원의 수교 주제 해설과 사진 기록 설명에서 함께 확인된다. ‘두 나라가 수교했다’는 짧은 문장 뒤에는 두 정부 대표가 공동성명에 서명한 외교 절차가 있었다.

외교부의 현재 국가별 개황도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일을 1992년 8월 24일로 표기한다. 따라서 이 날을 ‘협상 시작일’이나 ‘첫 정상회담일’로 바꾸어 적지 않는 것이 정확하다.


2. 수교공동성명은 무엇을 정했나

국가기록원이 소개한 공동성명의 첫 항목은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1992년 8월 24일자로 서로를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장이 수교의 가장 직접적인 기록이다.

공동성명은 모두 6개 항으로 구성됐다. 국가기록원 해설에 따르면 유엔 헌장 원칙에 따라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과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 평화 공존을 천명했다. 이 표현들은 이후 관계를 자동으로 규정하는 평가가 아니라, 서명 당시 양국 정부가 문서에 적은 원칙으로 읽어야 한다.

공동성명에는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수교가 단순히 대사관을 여는 절차만이 아니라, 한국의 기존 대외관계에도 변화를 수반한 외교적 결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글은 대만 관련 문구의 정치적·법적 해석을 공동성명과 국가기록원 해설의 범위 밖으로 넓히지 않는다.


3. 왜 1992년에 수교 협상이 가능했나

한·중 수교는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결정이 아니었다. 국가기록원은 1988년 7월 7일 특별선언을 북방외교의 출발점으로 설명하고, 1990년 양국이 무역대표부를 설치해 일부 영사 기능을 수행했다고 기록한다. 스포츠·관광·친척 방문 등 비정치 분야에서의 교류도 그 이전부터 늘고 있었다.

협상의 시간표도 남아 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92년 4월 수교 협상이 시작됐고, 약 넉 달 뒤인 8월 24일 공동성명 서명에 이르렀다. 다른 국가기록원 기록은 8월 23일 제4차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수교 조건이 타결되고, 이튿날 공동성명이 채택됐다고 정리한다.

이 배경을 ‘경제 때문이었다’거나 ‘냉전 종식 때문이었다’는 한 가지 이유로 환원할 수는 없다. 국가기록원은 냉전 종식, 북방외교, 양국의 교류 확대와 현실적 필요가 함께 작용한 흐름을 제시한다. 역사적 원인을 말할 때는 이런 여러 조건을 하나의 단정으로 바꾸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4. 수교일과 첫 정상회담은 어떻게 다른가

8월 24일은 외무장관이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날이다. 반면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그보다 한 달여 뒤인 1992년 9월 27일부터 30일까지였다. 국가기록원은 이 방문을 한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인 중국 국빈 방문으로 기록한다.

국가기록원의 ‘오늘의 기록’에 쓰인 사진 설명도 이 구분을 뒷받침한다. 사진은 수교 당일 장면이 아니라, 같은 해 9월 한·중 첫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는 노태우 대통령을 환송하는 모습이다. 사진의 생산 연도와 사건의 날짜가 같다고 해서 촬영 시점이 수교 당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수교는 국가 간 외교관계를 공식적으로 세운 절차이고, 정상회담은 그 관계가 수립된 뒤 국가원수들이 만난 외교 일정이다. 둘은 연결돼 있지만 같은 사건도, 같은 날짜도 아니다.


5. 한·중 국교 수립을 기록할 때 구분해야 할 것

첫째, 수교일과 정상회담일을 구분한다. 1992년 8월 24일은 공동성명 서명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일이고, 첫 정상회담은 같은 해 9월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열렸다.

둘째, 공동성명의 문구와 오늘의 평가를 구분한다. 상호 존중·평등과 호혜·평화 공존은 공동성명에 적힌 원칙이다. 이후 관계의 성과나 한계를 평가하려면 별도의 시점과 자료가 필요하다.

셋째, 당시 기록과 현재 수치를 구분한다. 국가기록원의 오래된 해설에 나오는 교역 순위나 규모를 오늘의 현황처럼 다시 쓰지 않는다. 변화하는 무역·인적 교류 수치는 발행 시점의 외교부·통계 자료로 따로 확인해야 한다.

1992년 8월 24일의 공동성명은 냉전기 단절돼 있던 두 정부의 관계를 공식 외교관계로 전환한 문서다. 이 날을 정확히 기억하는 일은 한 장의 서명과, 그 전후로 이어진 협상·정상 외교의 시간표를 함께 보는 데서 시작한다.


마치며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두 정부는 상호 승인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을 결정했고, 국가기록원은 이를 한국과 중국의 정식 국교 수립으로 기록한다.

수교는 관계의 출발점이었다. 같은 해 9월 첫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후 양국 관계는 다양한 변화와 과제를 거쳤다. 그래서 이 날을 기록할 때는 공동성명 서명, 수교, 정상회담을 한 줄의 사건으로 섞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한국과 중국은 언제 정식 국교를 수립했나요?

국가기록원과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1992년 8월 24일입니다. 이날 베이징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했습니다.

Q2. 한·중 수교공동성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두 정부의 상호 승인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유엔 헌장 원칙에 따른 상호 존중·내정 불간섭·평등과 호혜·평화 공존 등이 담겼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공동성명이 6개 항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합니다.

Q3. 한·중 첫 정상회담도 1992년 8월 24일에 열렸나요?

아닙니다. 수교공동성명은 8월 24일에 서명됐고, 노태우 대통령의 첫 중국 국빈 방문과 첫 정상회담은 같은 해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이뤄졌습니다.

Q4. 수교 전에도 한국과 중국은 교류가 있었나요?

있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1990년 양국이 무역대표부를 설치해 일부 영사 기능을 수행했고, 그 전후 스포츠·관광·친척 방문 같은 분야에서 교류가 확대됐다고 기록합니다.


참고 자료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한국-중국 수교」
  • 국가기록원, 「연표와 기록: 한중수교」
  • 국가기록원, 「오늘의 기록: 한·중 국교 수립」
  • 외교부, 「China: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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