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8월 27일 오전 9시, 영국 해군 함정이 동아프리카의 잔지바르 궁전을 포격했다. 술탄 자리를 차지한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영국의 퇴위 요구를 거부한 뒤였다. 포격은 백기가 올라올 때까지 이어졌고, 전쟁의 길이는 흔히 약 38분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전쟁’이라는 표현은 강렬하지만, 그 짧음이 피해의 작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국역사협회는 포격 종료 시점을 38분·40분·43분으로 다르게 전하는 자료가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확한 시간은 측정 기준에 따라 차이가 나며, 약 38분이라고 쓰는 것이 가장 신중하다.
사건의 직접 계기는 잔지바르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의 사망 뒤 벌어진 계승 다툼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영국이 보호국으로서 잔지바르의 통치와 외교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식민지 질서가 있었다. 누가 술탄이 될지의 문제는 곧 누가 권력을 행사할지의 문제였다.
이 글에서는 8월 27일 아침의 전개, 왜 전쟁 시간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짧은 전쟁’ 이상의 역사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차례로 정리한다.
목차
- 1.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언제 시작됐나
- 2. 왜 술탄 계승이 전쟁으로 번졌나
- 3. ‘38분 전쟁’의 시간은 왜 자료마다 다른가
- 4. 포격 뒤 잔지바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 5. 가장 짧은 전쟁이라는 말만으로 충분할까
- 자주 묻는 질문 (FAQ)
1.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언제 시작됐나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1896년 8월 27일 잔지바르에서 벌어졌다. 영국역사협회는 영국 해군 함정 5척이 오전 9시, 최후통첩이 끝난 뒤 잔지바르의 왕궁과 하렘을 포격하기 시작했다고 정리한다.
당시 영국은 칼리드 빈 바르가시에게 궁전을 떠나고 술탄 자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남아프리카역사온라인에 따르면 영국 측은 전날인 8월 26일 병력과 함정을 모아,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퇴거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제시했다.
기한이 지나자 포격이 시작됐다. 이 날짜를 기억할 때는 ‘영국이 잔지바르와 충돌했다’는 요약을 넘어, 보호국 체제 아래 현지 통치자의 계승 문제에 영국이 무력으로 개입한 사건이었다는 점까지 함께 봐야 한다.
2. 왜 술탄 계승이 전쟁으로 번졌나
직전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가 1896년 8월 25일 사망하자, 칼리드 빈 바르가시는 궁전에 들어가 자신을 술탄으로 선언했다. 영국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하무드 빈 무함마드를 지지했다.
이는 단순한 왕실 내부의 경쟁만은 아니었다. 남아프리카역사온라인은 잔지바르가 영국과 독일의 동아프리카 진출, 무역·정치·문화에 대한 영국의 간섭 속에서 긴장이 높아진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칼리드에 대한 지지에는 유럽 세력의 개입에 저항하려는 기대도 섞여 있었다.
영국이 선호한 후보가 술탄이 되면 보호국 통치는 한층 수월해졌다. 반대로 영국이 독립적이라고 본 칼리드의 즉위는 그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전쟁의 핵심에는 압도적인 군사력만이 아니라, 그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불평등한 정치 관계가 있었다.
3. ‘38분 전쟁’의 시간은 왜 자료마다 다른가
‘38분’은 포격이 시작한 뒤 백기가 올라온 시점을 기준으로 한 대표적인 수치다. 영국역사협회는 오전 9시에 포격이 시작된 뒤 38분, 40분 또는 43분 후에 포격이 멈췄다는 여러 기록을 함께 소개한다.
그래서 이 전쟁을 정확히 38분이었다고 단정하기보다, 약 38분에서 40여 분 사이로 기록되는 매우 짧은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낫다. 시작 명령, 실제 사격 개시, 백기 확인, 포격 중지 가운데 어느 순간을 기준으로 잡는지에 따라 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치의 작은 차이가 사건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영국의 포격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궁전의 저항을 무너뜨렸고, 이 때문에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일반적으로 기록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소개된다.
4. 포격 뒤 잔지바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포격으로 궁전과 방어 시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남아프리카역사온라인은 잔지바르 측에서 약 500명의 사망자 또는 부상자가 발생했고, 영국 왕립해군 측 피해는 부상자 1명으로 기록된다고 전한다. 숫자는 자료마다 산정 범위가 다를 수 있어, 이 글에서는 ‘약’이라는 범위를 유지한다.

칼리드 빈 바르가시는 궁전을 떠나 독일 영사관으로 피신했다. 이후 영국이 지지한 하무드 빈 무함마드가 술탄으로 선포됐다. 포격이 끝난 뒤의 권력 교체까지 포함해 볼 때, 이 사건은 짧은 교전이 아니라 영국의 영향력이 노골적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잔지바르는 이후에도 영국의 보호국 체제 아래 놓였다. 남아프리카역사온라인은 영국이 1963년 잔지바르가 독립할 때까지 보호국으로 통치했다고 설명한다. 1896년의 전쟁은 이 긴 지배의 한 장면이었다.
5. 가장 짧은 전쟁이라는 말만으로 충분할까
38분이라는 숫자는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숫자만 남기면, 누가 최후통첩을 만들었고 누가 압도적인 함포를 동원할 수 있었으며 누가 그 결과로 통치권을 얻었는지가 지워진다.

이 사건은 식민지 시대의 전쟁이 얼마나 비대칭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영국은 해군력과 보호국 지위를 바탕으로 계승 분쟁에 개입했고, 잔지바르 쪽의 저항은 짧은 시간 안에 무너졌다. 짧은 전쟁은 오히려 힘의 격차가 얼마나 컸는지를 드러낸다.
1896년 8월 27일을 기록하는 이유는 ‘가장 짧은 전쟁’이라는 흥미로운 기록을 반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한 국가의 통치권이 외부 제국의 무력과 연결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마치며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잔지바르 술탄국의 전쟁은 약 38분 만에 끝났다. 정확한 종료 시간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영국 해군의 포격과 칼리드 빈 바르가시의 퇴각, 하무드 빈 무함마드의 즉위라는 흐름은 공통으로 확인된다.
이 전쟁을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억하되, 그 짧은 시간 뒤에 있던 보호국 통치와 식민지 권력의 격차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건은 퀴즈의 정답이 아니라, 19세기 동아프리카의 역사로 남는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정확히 몇 분 동안 이어졌나요?
통상 약 38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영국역사협회는 포격 종료 시점을 38분, 40분, 43분으로 전하는 자료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약 38분에서 40여 분 사이라고 쓰는 것이 정확합니다.
Q2.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언제 일어났나요?
1896년 8월 27일, 오늘날 탄자니아의 일부인 잔지바르에서 일어났습니다. 영국 해군은 오전 9시 최후통첩이 끝난 뒤 궁전을 포격했습니다.
Q3. 전쟁은 왜 시작됐나요?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가 사망한 뒤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술탄을 선언했지만, 영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하무드 빈 무함마드를 지지했습니다. 이 계승 분쟁은 영국의 보호국 통치와 동아프리카 식민지 경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무력 충돌로 번졌습니다.
Q4. 전쟁 뒤 누가 술탄이 되었나요?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궁전을 떠난 뒤, 영국이 지지한 하무드 빈 무함마드가 술탄으로 선포됐습니다.
참고 자료
- 영국역사협회(Historical Association), 「The shortest war in history: The Anglo-Zanzibar War of 1896」
- 남아프리카역사온라인(South African History Online), 「The Anglo-Zanzibar War of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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