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8월 19일, 장면은 어떻게 제2공화국의 내각을 맡았나

1960년 8월 19일, 민의원은 장면의 국무총리 임명을 찬성 117표, 반대 107표, 기권 1표로 인준했다. 국가기록원이 남긴 이 표결 기록은 4·19혁명 뒤 한국이 채택한 의원내각제가 실제 인선 단계로 들어간 순간을 보여 준다.

이날을 곧바로 ‘제2공화국의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국가기록원 연표에는 6월 15일 내각제 개헌안 국회 통과, 7월 29일 민의원·참의원 총선거,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취임이 각각 다른 날짜의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8월 19일의 핵심은 대통령 취임식이 아니라 국무총리 인준이다. 당시 개헌은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를 내각책임제, 곧 의원내각제로 바꾸려 했고, 장면의 인준은 그 구조에서 내각을 이끌 인물을 정하는 절차였다.

이 글은 표결 숫자만 되풀이하지 않는다. 왜 4·19 뒤 제도가 바뀌었는지, 대통령과 총리의 자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그리고 짧았던 제2공화국의 헌정 실험을 어떤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지 차례로 살핀다.


목차


1. 8월 19일 민의원에서는 무엇이 결정됐나

국가기록원 1960년 연표는 8월 19일의 일을 ‘장면 총리 인준’으로 기록하고, 표결 결과를 찬성 117표·반대 107표·기권 1표로 제시한다. 이날 민의원이 동의한 대상은 장면의 국무총리 임명이었다.

표가 크게 갈렸다는 점도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117표는 인준에 필요한 결론을 만들었지만, 반대 107표가 있었다는 기록은 당시 의회 안의 의견 차이도 숫자로 남겼다. 다만 이 한 표결만으로 각 의원이나 정당의 모든 정치적 입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장면은 해방 이후 국무총리와 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4·19 뒤 의원내각제인 제2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했다고 정리한다. 8월 19일은 그 이력에서 다시 총리로 인준된 날짜다.


2. 왜 의원내각제로 헌법을 고쳤나

국가기록원 연표는 1960년 4월 19일 4·19혁명 발발, 6월 15일 내각제 개헌안의 국회 통과를 차례로 기록한다. 두 날짜 사이에 한국의 권력 구조를 바꾸는 논의가 이어졌다는 뜻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1960년 헌법 제4호 제정·개정이유는 개헌의 목적을 종래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권력 구조를 바꾸는 데 두었다고 설명한다. 같은 자료는 대통령의 지위를 원칙적으로 의례적·형식적 지위에 한정하는 완전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고 적는다.

여기서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직접 이끄는 제도와는 다른 방식이라는 뜻이다. 내각과 국무총리의 역할이 커지고, 의회와 내각의 관계가 정부 운영의 중심이 된다. 8월 19일의 인준은 바로 이 제도가 사람과 절차를 통해 모습을 갖춰 가는 과정이었다.


3.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의 자리는 어떻게 달랐나

두 이름을 같은 날의 사건처럼 섞으면 안 된다. 국가기록원 연표상 윤보선의 제4대 대통령 취임은 8월 13일, 장면 총리 인준은 8월 19일이다. 대통령 취임과 총리 인준은 여섯 날 차이로 이어진 별개의 헌정 절차였다.

1960년 제2공화국 당시 곽상훈 민의원 의장, 장면 국무총리, 윤보선 대통령
▲ 1960년 제2공화국 당시 곽상훈 민의원 의장, 장면 국무총리, 윤보선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의원내각제 아래 대통령과 총리, 의회의 역할이 구분됐던 당시의 정치 구조를 보여 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개정 헌법의 취지는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무게를 옮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윤보선 대통령을 당시 내각 운영의 중심인 총리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면 제도의 차이를 놓치게 된다. 장면 총리는 국무총리로서 내각을 이끄는 자리였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아무 역할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글에서 확인하는 범위는 1960년 개헌이 대통령의 지위를 원칙적으로 의례적·형식적 지위에 두고 내각책임제를 채택했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 취임과 총리 인준이 서로 다른 절차였다는 점이다.


4. 표결 전후의 시간표는 어떻게 이어졌나

1960년의 변화를 한 날짜로 압축하기보다, 순서를 따라 보는 편이 정확하다. 4월 19일 혁명이 일어났고, 6월 15일 내각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7월 29일에는 양원제 아래 제5대 총선거가 실시됐다.

이후 국가기록원은 8월 8일 제2공화국 민의원·참의원 개원,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취임, 8월 19일 장면 총리 인준을 기록한다. 이 흐름은 헌법 개정, 국회 구성, 대통령 선출·취임, 총리 인준이 단계적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제2공화국 출범일’을 하나의 날짜로만 말할 때에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밝혀야 한다. 헌법의 시행, 의회의 구성, 대통령 취임, 총리 인준은 각각 의미 있는 이정표지만 같은 사건은 아니다.


5. 이 날을 기록할 때 구분해야 할 것

첫째, 8월 19일은 장면 국무총리 인준일이다. 국가기록원 연표의 표현을 따라, 이날을 장면 내각 전체의 단일한 공식 출범일로 단정하지 않는다.

둘째, 윤보선 대통령 취임일은 8월 13일이다. 두 인물은 제2공화국의 서로 다른 공적 자리에 있었고, 날짜와 역할을 함께 구분해야 당시의 의원내각제 구조가 보인다.

셋째, 제2공화국의 평가는 8월 19일 하루의 표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은 그 뒤 정치 과정 전체를 재단하지 않고, 4·19 이후 새 헌법 아래 총리 인준이 이뤄진 사실과 제도적 의미를 중심으로 기록한다.

역사는 때때로 취임식보다 표결 기록에서 더 선명해진다. 찬성 117표, 반대 107표, 기권 1표. 그 숫자는 1960년 한국이 다른 방식의 정부 운영을 실제로 시작하려 했던 장면을 남긴다.


마치며

1960년 8월 19일 민의원은 장면의 국무총리 임명을 찬성 117표, 반대 107표, 기권 1표로 인준했다. 이는 4·19혁명 뒤 내각책임제로 바뀐 헌법 아래에서, 내각을 이끌 총리를 정한 절차였다.

윤보선 대통령 취임(8월 13일)과 장면 총리 인준(8월 19일)을 구분해 보면, 제2공화국은 한 번의 선언이 아니라 개헌·선거·의회 구성·인준이 이어진 과정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장면 국무총리는 언제 인준됐나요?

국가기록원 1960년 연표는 민의원이 1960년 8월 19일 장면 국무총리를 인준했다고 기록합니다.

Q2. 장면 총리 인준 표결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국가기록원 연표에 따르면 찬성 117표, 반대 107표, 기권 1표입니다.

Q3. 윤보선 대통령 취임일은 장면 총리 인준일과 같은 날인가요?

아닙니다. 국가기록원 연표상 윤보선 대통령 취임은 1960년 8월 13일이고, 장면 총리 인준은 8월 19일입니다.

Q4. 1960년 헌법 개정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제정·개정이유는 종래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권력 구조를 바꾸고, 원칙적으로 의례적·형식적 대통령 지위의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참고 자료

  • 국가기록원, 「연표와 기록: 1960년」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헌법」 [헌법 제4호, 1960. 6. 15.] 및 제정·개정이유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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