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29일 오후 3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 깃대에 태극기가 올랐다. 국권을 빼앗긴 뒤 32년째가 되는 국치일이었다. 행사를 추진한 쪽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였다.
이날 태극기는 한·미 양국의 국가가 연주된 뒤 게양됐다. 그에 앞서 오후 2시에는 미국 육군 군악대와 의장대, 한인경위대 등이 태극기를 앞세워 빅토리아하우스에서 시청까지 행진했다. 시청에서 열린 행사는 태극기를 눈에 보이게 올린 일인 동시에, 해외 한인 사회가 한국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알린 자리였다.
다만 이 장면을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한 날”이라고 쓰면 정확하지 않다. 당시 한인 사회는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했고, 로스앤젤레스 시청의 게양 행사는 그 요구를 알리는 공개 행사였다. 행사의 의미와 외교적 승인 여부는 구분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8월 29일이 왜 선택됐는지, 현기식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리고 이 행사가 남긴 의미를 공식 기록의 범위에서 정리한다.
목차
- 1. 1942년 8월 29일 LA 시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2. 왜 하필 8월 29일이었나
- 3. 현기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
- 4.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승인’과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 5. 국치일의 기억은 어떻게 독립운동의 행동이 됐나
- 자주 묻는 질문 (FAQ)
1. 1942년 8월 29일 LA 시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태극기 현기식을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 깃대에 태극기를 게양한 행사로 정의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에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나성, 즉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태극기를 높이 단 현기식의 식순이 남아 있다.
이 행사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시기에 추진됐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국치일에 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알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려는 목적으로 시청 게양식을 마련했다.
‘현기식’은 깃발을 거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이날의 태극기는 단지 행사장 장식이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해외 한인들이 한국의 존재와 독립 의지를 공적 공간에 드러낸 상징이었다.
2. 왜 하필 8월 29일이었나
1910년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이 관보에 게재되어 공포·시행된 날이다. 한인 사회는 이 날을 국치일로 기억했다. 1942년의 현기식은 바로 그 날짜를 택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가장 치욕스러운 국치일에 자주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겠다는 뜻으로 8월 29일을 정했다고 설명한다. 상실을 기념하는 날을 독립을 요구하는 공개 행동의 날로 바꾼 셈이다.
여기서 날짜를 섞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910년 8월 22일은 한일병합조약의 조인일이고, 8월 29일은 관보 게재와 공포·시행일이다. 1942년 현기식은 이 가운데 8월 29일의 국치일 기억과 연결돼 있다.
3. 현기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

행사는 오후 2시부터 움직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미국 육군 군악대와 의장대의 뒤를 따라 한인경위대 등이 태극기를 앞세워 빅토리아하우스에서 로스앤젤레스 시청까지 행진했다고 기록한다.
시청에서는 태극기가 시장 플레처 보런에게 전달됐다. 한·미 양국의 국가가 연주된 뒤, 오후 3시 정각 태극기가 시청 깃대에 게양됐다. 부시장 프랭크 피터슨의 개회사와 김호, 전 해군제독 앨버트 마셜 등의 연설,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의 축사 대독도 이어졌다.
독립기념관 소장 식순에는 미국 국가와 애국가 연주, 부시장 개회사, 로스앤젤레스 시장에게 태극기 증정, 대한민국 임시정부·주미외교위원부·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메시지 낭독, 시장 답사,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 연설 등이 담겨 있다. 행사 전개를 확인할 수 있는 동시대 기록이다.
4.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승인’과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현기식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목표와 결과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이 행사를 근거로 미국 연방정부가 이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확인되는 사실은 로스앤젤레스 시청에서 태극기가 게양됐고, 한인 사회가 이를 통해 자주독립 의지와 임시정부 승인 요구를 알렸다는 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행사가 로스앤젤레스 시가 한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임시정부 승인에 호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 사건의 의미를 줄일 필요는 없지만, 시청에서 열린 공개 행사와 국가 차원의 외교적 승인을 같은 것으로 섞어서도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은 그 구분을 지킬 때 더 선명해진다.
5. 국치일의 기억은 어떻게 독립운동의 행동이 됐나
현기식은 한 번의 의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미국 전시정보국의 배려로 행사가 세계에 알려졌고, 김호의 연설문 등이 12개 언어로 번역돼 단파 라디오로 방송됐다고 설명한다. 이후 재미한족연합회는 미국 각지의 국기 게양을 청원했다.
이 사실이 보여 주는 것은 해외 독립운동의 방식이다. 해외 한인 사회는 모금이나 군사 지원만 한 것이 아니라, 행진·연설·기록·방송을 통해 한국 독립 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렸다. 로스앤젤레스 시청의 깃대는 그 활동이 응축된 한 장면이었다.
1942년 8월 29일을 기억할 때, 태극기가 올라간 사실만이 아니라 그 날짜를 선택한 사람들의 뜻까지 함께 볼 수 있다. 국치를 잊지 않겠다는 기억이 독립을 요구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마치며
1942년 8월 29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로스앤젤레스 시청에서 태극기 현기식을 열었다. 오후 2시 행진을 시작해 오후 3시 시청 깃대에 태극기를 올린 이 행사는, 국치일을 자주독립 의지의 공개 표명으로 바꾼 자리였다.
이 행사는 미국 연방정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승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해외 한인 사회가 독립을 요구하고 한국의 존재를 널리 알린 역사적 활동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태극기 현기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에서 열렸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독립기념관 소장 식순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추진한 행사임을 기록합니다.
Q2. 현기식에서 태극기는 몇 시에 게양됐나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오후 3시 정각입니다. 오후 2시에는 한인경위대 등이 태극기를 앞세워 시청까지 행진했습니다.
Q3. 이 행사로 미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했나요?
아닙니다. 행사는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고 한국 독립을 알리기 위해 열렸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시청의 게양 행사와 미국 연방정부의 외교적 공식 승인은 구분해야 합니다.
Q4. 왜 8월 29일에 행사를 열었나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공포·시행일로 기억된 국치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그 날에 자주독립 의지를 알리려 했습니다.
참고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극기 현기식」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로스앤젤레스시청 현기식 식순(1942.8.29.)」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 국기 게양대에 오른 태극기」
- 국사편찬위원회,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조약」, 『사료로 본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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