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여운형 선생을 기억하며
7월 19일. 여름의 한복판인 오늘은, 많은 이들에게 그저 무더위 속의 하루일 것이다. 하지만 1947년 이 날,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아쉽게 떠나보낸 인물 중 한 명이 스러졌다. 오늘은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의 기일이다.
함양 여씨, 양평에서 나다
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 25일 ~ 1947년 7월 19일)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며 민족의 미래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몽양'이라는 호는 '양(陽)을 꿈꾸었다'는 뜻으로, 어둡던 시대에 밝은 조국을 그리며 지었다.
해방, 그리고 건국준비위원회
1945년 광복 직후, 여운형 선생은 남과 북이 함께하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그의 소원은 분명했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하나,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일세."
— 몽양 여운형
좌우의 대립 속에서도 그는 중도와 통일을 향해 걸었다.
효화동 로터리에서 스러지다
그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좌우 모두로부터 견제받는 가운데, 1947년 7월 19일 서울 효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의 손에 암살되었다.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하던 선생은, 그리움만큼이나 아쉬운 나이에 귀중한 목숨을 바쳤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
여운형 선생은 '누구의 편'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편'에 섰던 인물이었다. 분단이 고착되는 찰나, 중도와 통합으로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잇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비록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얼마나 손을 내밀고 있는가.'
7월 19일. 이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역사적인 날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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